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||[[파일:국보193호유리병.jpg|width=450]]||[[파일:kKakaoTalk_20230306_095702856_03.jpg|width=450]]|| || 유리병. 이 사진상으로는 병의 색깔이 눈에 띄지 않는다. ||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모습 || 유리병은 전체적으로 연녹색을 띄는 병으로 몸체는 동그란 [[계란]]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전형적인 로만글라스의 형태로, 4-5세기 [[로마 제국]]의 영역이던 [[그리스]]나 [[시리아]], [[이스라엘]] 및 [[팔레스타인]] 등 동부 [[지중해]]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리 제품들과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. 동로마 지역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불기 기법대로, 열을 가하면서 관의 한 쪽 끝에 액화유리를 붙여 놓고 다른 한 쪽으로 숨을 강하게 불어서 병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. 병의 목과 받침은 [[고대 그리스]]에서 [[포도주]]를 보관할 때 사용한 항아리 [[https://www.google.com/search?q=oinochoe&hl=ko&sxsrf=ALeKk02k_a0Cxbnhp6hKxM_IX27ze4c64A:1607257975396&source=lnms&tbm=isch&sa=X&ved=2ahUKEwiQ_r3FrrntAhWiwYsBHaF7COQQ_AUoAXoECAYQAw&cshid=1607257986651738&biw=1920&bih=1089|오이노코에(oinochoe)]]의 형태 혹은 [[페르시아]] 계열 병의 양식과 유사한데, 이로 미루어보아 유리병이 동부 지중해 지역이나 페르시아 지역에서 전래했다고 추정한다. 병에 부착된 장식은 청색 줄인데, 유리에 색을 입혀 가늘게 뽑아 표면에 붙인 것이다. 본 병의 목에는 줄 10개를, 병 주둥이에는 줄 1개를 장식했다. 이처럼 병을 줄로 장식하는 것은 초기 [[동로마 제국]] 시기에 유행했던 방식이라고 한다. [[파일:kKakaoTalk_20230306_095702856_04.jpg]] 병의 손잡이는 ㄱ자로 꺾인 진한 파란색 유리인데,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손잡이가 금실로 감겼다는 점이다. 유리병이 황남대총에 부장되기 전에 손잡이가 파손되자, 이를 수리한다고 [[금]]실로 감은 것으로 보인다. 다시 말하자면, 이 유리병을 수입한 당대 신라에서는 유리가 금만큼이나 희소하거나 혹은 금보다도 더 귀했고, 황남대총 같은 거대한 무덤에 묻힐 정도로 고위인물일지라도 유리공예품을 마음대로 새로 구하기는 힘들었음을 시사한다. 따라서 유리가 파손되자 대체품을 찾지 못하고, 유리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귀한 금실로 [[미봉책|적당히 때운 것]]이라 추정할 수 있다. 본 문서의 상단 사진 속 유리병을 보면 색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, 이는 발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 과학부에서 [[에폭시]]를 사용해 복원했기 때문이다.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폭시가 [[황변|누렇게 변색]]되었을 뿐만 아니라, 조각을 맞추지 않고 적당히 형태에 맞춰 붙여놓기만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. 결국 2014년에 에폭시를 제거하고 모든 파편의 형태를 맞춰 재복원 및 보존작업에 들어갔다. 이 과정에서 미처 결합되지 못한 채 수장고에 있던 유리 파편들도 제 위치를 찾아 빈틈없이 복원하였다. ||[[파일:국보193호1번유리잔.jpg|width=450]]||[[파일:kKakaoTalk_20230306_095702856_02.jpg|width=450]]|| || 잔 1. 여기저기에 조각이 빠진 부분이 보인다. ||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모습 || 잔 1은 유리병과 마찬가지로 연한 녹색이고 청색 줄로 장식되었다. 잔의 입과 몸체에는 한 줄 씩 청색의 줄이 덧붙여져 있다. 잔의 몸체 중상부에 붙여진 청색 줄은 물결 무늬이다. 잔 몸체 아래쪽은 따로 색을 입히진 않은 격자 무늬로 장식했다. 잔 1은 유리병과 유사한 양식으로 제작되었고 출토 당시 서로 매우 가까이 놓였으므로 잔 1과 유리병은 세트를 이루었다고 추정한다. ||[[파일:국보193호2번3번유리잔.jpg|width=450]]||[[파일:kKakaoTalk_20230306_095702856_05.jpg|width=450]]|| || 좌측 : 잔 2, 우측 : 잔 3 ||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모습[* 좌하단의 짙은 파란색 잔은 [[서봉총 유리잔]]이다.] || 잔 2과 잔 3은 세부에서 약간 다를 뿐 서로 거의 동일한 형태이다. 잔 2도 녹색인데 색은 아주 연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투명색에 가깝기도 하다. 잔의 입은 넓고, 전체적으로 도드라지는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. 잔 바닥의 가운데는 오목하게 약간 들어갔다. 잔 3도 녹색이고 잔 2보다는 그 색이 더 진하다. 잔의 입 주변은 둥글게 말려서 볼륨감이 느껴지고 잔의 몸체보다 더 진한 청록색을 띈다.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서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유물들로, [[경주 노서리 상감 유리구슬]], [[경주 월성 안계리 유리잔]], [[경주 월성로 유리잔]], [[경주 월지 유리잔]], [[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]], [[금관총 유리잔]], [[금령총 유리잔]], [[서봉총 유리잔]], [[서봉총 유리팔찌]], [[식리총 상감 유리구슬]], [[천마총 유리잔]], [[황남대총 남분 유리잔]], [[황남대총 남분 유리제곡옥부 목걸이]], [[황남대총 북분 유리구슬 거푸집]], [[황남대총 북분 유리잔]], [[황남대총 북분 커트장식 유리잔]] 등과 함께, 당시 신라 시대에 서역과의 유리제품 교역 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준다. 또한 이 유물들을 통해 고대 [[한반도]]에는 유리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유리가 금만큼이나 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.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, 당대 신라에서 서역과 교역이 행해졌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1978년 12월 7일 [[대한민국의 국보|국보]] 제193호로 지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